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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 디저트

[한국의 떡] 떡의 정의 및 역사와 유래(삼국 시대/고려 시대/조선 시대)

by peacefultoday 2025. 4. 9.

● 떡의 정의


 떡이란 곡식을 가루 내 물과 반죽하여 쪄서 만든 음식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써, 흰떡·시루떡 ·인절미 ·송편 ·화전 ·주악 ·경단 등이 모두 이에 속합니다.

 

 

● 떡의 유래

 

 우리나라 떡의 유래와 발달과정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청동기시대의 유적인 나진초도패총 및 삼국시대의 고분군에서 시루가 출토되고 있어, 우리나라의 떡은 삼국(고구려, 신라, 백제)이 정립되기 이전에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추론이 지배적입니다. 이러한 추론을 뒷받침하는 사시로, 삼국시대 이전에 이미 쌀을 비롯한 피 ·기장 ·조 ·수수와 같은 곡물이 생산되고 있었고, 신석기시대의 유적지인 황해도 봉산 지탑리 유적에서 곡물의 껍질을 벗기거나, 가루로 빻는데 쓰는 원시적 도구인 갈돌이 발견되었으며, 이 무렵의 생활유적지에는 거의 예외 없이 연석(갈돌)이나 절구가 발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무문토기시대 유적과 삼국시대 고분에서도 거의 시루가 출토되었으며, 고구려 시대의 유적인 황해도 안악 제3호 고분 벽화와 황해도 양수리 벽화 등에서도 시루에 음식을 찌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시루에서 찐 음식인 떡이 농경 전개시기부터 널리 애용되었으리란 추측을 가능케 합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떡은, 떡을 찌는데 꼭 필요한 상용 용구인 시루의 역사와 같이한다고 볼 수 있으며, 아울러 곡물의 가루로 찐 시루떡이나 쌀을 찐 다음 절구에서 쳐서 만든 도병류가 상용되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편, 중국 전국시대(BC.480~222)의 문헌인 《주례》를 보면 '자'와 '분자'라고 하여 곡물을 쪄서 문드러지게 치는 떡과 친 떡에 콩가루를 묻힌 떡을 소개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중국과 접경을 이루어 당시의 떡은 그들의 떡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송편
송편

 

● 삼국시대의 떡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로 접어들어 권농시책과 함께 본격적인 농경시대가 전개되면서 쌀을 중심으로 한 곡물의 생산량이 증대되어 쌀 외의 곡물을 이용한 떡도 다양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왕 원년(298)에 왕자인 유리와 탈해의 왕위계승과 관련된 기록이 있는데, '탈해가 유리에게 왕위는 용렬한 사람이 감당할 바 못 되며, 듣건대 성스럽고 지혜로운 사람은 이가 많다고 하니 시험을 하여 결정하자고 하여, 두 사람이 떡을 깨물어 본 결과 유리의 치아 수가 더 많아 왕위에 올랐다'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당시의 떡이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 밝혀진 것이 없으나 깨물어서 잇자국이 선명하게 날 정도의 떡이라면 흰떡이나 인절이, 절편류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동서 <열전 백결선생조> 의하면, 세모에 이웃에서 떡을 찧느라 방아소리가 들리자 가난하여 떡을 치지 못하는 아내의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주기 위하여 거문고로 떡방아소리를 내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백결선생이 거문고로 떡방아소리를 내었다고 한 것은 떡메로 떡을 치는 소리인 바, 흰떡이나 인절미와 같은 절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밖에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제향을 모실때의 차림음식이 기록되어 있는데, '조정의 뜻을 받들어 세시마다 술, 감주, 떡, 밥, 차, 과실 등 여러 가지를 갖추어 제사를 지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들로 미루어 떡은 당시에 제사음식으로도 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고려시대의 떡

 

 고려시대로 접어들면서 떡은 한층 발달하였고, 상류층이나 세시행사나 제사 음식으로서 뿜만 아니라 하나의 별식으로서 일반에 이르기까지 널리 보급되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1756년 《해동역사》에 고려사람들이 밤백설기인 율고를 잘 만든다고 칭송한 중국인의 견문을 소개하였으며, 지금으로부터 1500여 년 전 원의 기록인 《거가필용》에 '고려율고'라는 우리의 떡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뛰어난 떡 솜씨는 여러 기록에서 엿볼 수 있는데 즉, 떡을 찔 때 꿀물을 내려서 공기가 고르게 들어가게 함으로써, 떡이 고르게 잘 익고 탄력성이 커지며 또한 쉽게 굳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터득했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또 1613년 《지봉유설》《송사》를 인용하여 기록하기를, '고려에서는 상사일(음력 3월 3일)에 청애병(쑥떡)을 으뜸가는 음식으로 삼았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이 당시에도 쌀가루에 쑥을 섞어 찐 쑥설기가 보편화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 말기에 이르러서는 단자류와 전병 등 다양한 종류의 떡이 등장하였습니다. 고려 공양왕 때 목은 이색의 저서 《목은집》에 '유두일에는 수단을 하였고, 찰수수로 전병을 부쳐 팥소를 싸서 만든 찰전병이 매우 맛이 좋았다'라고 하는 기록과 함께 '저머'라고 하는 찰기장으로 만든 송편도 등장합니다.

이밖에 증편의 일종인 상화떡이 등장하는데, 상화떡(상화병)은 발효시켜 팥소를 넣어 만든 것이 오늘날의 증편과는 다릅니다. 《고려가요》에 '쌍화점에 쌍화 사러 가고 신딘/회회 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 이 말씀이 이 점 밖을 나명들 명/다로러거더러 죠고맛감 삿기 광대 네 말이라 흐리라'라고 하였는바, 그 내용인 즉 '쌍화점에 갔더니 회교도인이 내손을 쥡디다. 이 소문이 상점밖에 퍼지면, 조그마한 새끼 광대, 네가 퍼뜨린 것인 줄 알리라' 하는 말입니다. 사실 이 노래는 고려의 수도인 개성 부근에 유행되던 속요로서, 당시 고려에 와 있었던 아라비아 상인과 고려 여인과의  남녀관계를 노래한 것이나, 그 내용에 있어 쌍화점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미 당시에 떡이 상품화되어 일반에 널리 보급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를 떡이 일반화되었던 시기로 본다면, 조선시대는 떡의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종류와 용도가 한층 다양해지고,  조리 및 가공법의 발달로 맛도 향상되었습니다.

 

 

● 조선시대의 떡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떡은 혼례 ·빈례 ·제례 등 각종 행사와 대 ·소연회에 필수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 같은 습속은 지금까지도 전통과 관습으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농업기술과 음식의 조리 및 가공기술이 발달하여 식생활 문화 향상되었습니다.

국시로 내걸었던 유교가 사회 깊숙 뿌리를 내리면서 관혼상제 등의 의례와 세시행사가 관습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으며, 조과류와 함께 다양한 떡이 전통음식으로서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초기에는 단순하게 곡물가루를 증숙 하던 방법에서 벗어나 점차 다른 곡물을 배합하거나 부재료로 쓰는 소와 고물의 재료로 꽃이나 과일, 향신료를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즉 곡류는 물론이고 채소 ·과일 ·버섯 ·야생초 ·한약재 ·해조류 등을 주재료로 이용했고, 소와 고물, 그리고 감미료로 조청 · 꿀 ·계피 ·설탕 ·엿기름 ·참깨 ·팥 ·밤 ·대추 등이 이용되었으며, 치자 ·수리취 ·승검초 ·송기 ·쏙 ·연지 ·오미자 등이 발색소로 이용되면서 떡은 한층 화려해지고 모양도 다양해졌으며 맛 또한 독특해졌습니다.

조선시대의 떡을 기록한 문헌으로 1611년 《도문대작》을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다양한 조리서가 발간되어 떡 등의 음식 조리기술이 크게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음식지미방》 《음식보》 《증보산림경제》 《규합총서》 《임원십육지동국세시기》 《음식방문》 《시의전서》 《부인필지 《음식 만드는 법》 《군학회동 《옹희잡지》 《주방문 《술빚은 법》 《요록 《조선무쌍신식 요리제법》 《조선요리제법 《시의 방》 《조선세시기 《간편 조선요리제법》 《조선요리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 《이조궁중음식연회고》 《규곤요람 《조선상식 《성호사설》 《열왕세시기 《음식법》 등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떡을 만드는 기술이 얼마나 발달하였던지, 1815년 《규합총서》에 '석탄병'의 유래에 대해 적고 있는데, '맛이 차마 삼키기 안타까운 고로 석탄병이라 한다'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석탄병은 감백설기로, 쌀가루에 설탕·팥 ·밤 ·대추 ·잣 ·꿀 ·녹두 ·수시 ·계피 ·귤병을 섞어 고물을 얹어 찐 시루떡입니다.

떡은 궁중과 반가를 중심으로 더욱 사치스럽게 발전하여 조선시대 음식 관련 조리서에 등장하는 떡의 종류만 해도 무려 198가지에 이르고 떡을 만드는 데 사용된 재료의 가짓수도 95가지나 됩니다. 특히 궁중에서는 사치의 정도가 더욱 심하여 각색메시루떡, 각색 차시루떡, 각색조악, 화전, 각색단자 등을 높이 1자 8치로 높게 고여서 연회에 사용하였다고 하는 기록을 볼 수 있어 당시 조선 후기를 휩쓸었던 사치풍조가 떡에도 반영되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문헌으로 1670년 《음식지미방》에는 석이편법 ·밤설기법 · 전화법 · 빈잡법 · 잽과 법 · 상화법 · 증편법 · 섭산산법 등 8가지 떡 만드는 방법이 수록되어 있고, 1815년 규합총서》에는 석탄병·백설기 ·혼돈병 ·복령조화고 ·도행병 ·무떡 ·기단가오 ·신과병 ·토란병 ·송기떡 ·서여향병 ·석이병 ·삼화 ·밤조악 ·대추조악 등 27종의 떡이름과 만드는 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유구한 역사와 전통성, 토착적 성격을 간직해 오던 우리나라의 떡은 19세기 말로 접어들면서 한일합병과 이후 36년간의 일제의 강점기 그리고 6·25 전쟁 등 급격한 사회변화와 함께 물밀듯이 밀려 들어온 서양의 빵에 의해 밀려나기도 했지만, 그 문화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출처: 《한국의 떡 ·한과 ·음청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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